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니엘 오르테가 (문단 편집) === 1기 집권 === 임금인상, 문맹퇴치, 의로보건체계 재정비, 소모사 일당이 소유한 기업과 토지의 국유화 및 [[토지개혁]]을 통한 재분배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생산성도 급속하게 올라가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지원도 받는 등 희망차게 출발하는듯 싶었지만... 1980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고나서 점차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레이건은 소모사 일당과 산디니스타 내에서의 이탈파, 과도정부의 스페인어 강제화 정책에 불만을 품은 원주민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면서 내전이 대대적으로 터지게 되었고 경제재제도 가하면서 경제도 점차 먹구름이 끼게 된다.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사건]]이란 무리수까지 두면서 강력하게 오르테가 정권을 압박했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오르테가는 1984년에 원주민들과의 협상을 통해 자치권을 주는 방식으로 일단 내전의 고리중 하나를 끊어냈고,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오르테가는 혁명 후 첫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콘트라]]와의 대결을 이유로 징병제 도입과 언론탄압등의 조치를 취하며 점차 지지를 잃어가게 된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경제재제가 국제적인 비난에도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 막히는 등 지속적인 치명타를 입었다. 결국 언론검열 조치를 완전히 풀어버린 1987년부터는 일부 산디니스타 해방전선 당원들의 부패상이 보도되어 권위가 실추되었으며, 결정적으로 복지지출 축소와 초인플레이션이라는 악재가 겹쳐지면서 1기 임기 초중반에 그런대로 굴러나가던 경제는 1960년대 수준으로까지 추락하였다. 더불어 일부 민영화 정책도 시행하면서 지지를 대거 잃었다. 1990년 대선에서 40%의 지지를 얻는데 그치며 비올레타 차모로를 위시로 한 우파정권에게 정권을 내주게 된다. 사실 비올레타 차모로는 페드로 차모로의 부인으로 1980년대 초반에 다니엘 오르테가를 위시한 과두정부에 참여했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 등을 돌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